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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계관 입장에서 본 진화론

 

박영철, 백석대학교 정보통신학부 교수, 한국창조과학회 이사

 

요약

 

진화론은 주요 옹호론자들에 의해 전 우주를 통해 종과 복잡성이 계속 증가한다는 기본 원리로 주장되어진다. 그러나 진화론은 과학적인 이론이라기보다는 세계관인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17세기 이후의 과학, 다윈의 종의 기원과 진화론의 한계를 설명하고, 기독교 세계관의 입장에서 본 진화론을 기술한다.

 

 

I. 서론

 

창조주를 과학 분야에서 제거하려는 진화론자들의 시도가 자연주의적, 인본주의적인 세계관과 결합하여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빠르게 전파되어 왔다. 진화론의 자연주의적, 인본주의적 세계관은 이 시대를 풍류하는 시대적 정신이 되었으며 어떠한 세계관보다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1). 그러나 최근 들어 영국의 자연주의를 기초로 하여 하나님의 설계는 과학적 연구에 의해서도 알 수 있다고 믿는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 이론의 활발한 활동은 진화론의 배후에 자리잡고 있는 계몽주의적 이성주의와 자연주의 세계관을 지적하고 그것의 한계, 즉 자충족적이라는 가정의 한계를 드러냄으로써 진화론을 반박하고 있다(2).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은 지난 수세기 동안 계속되고 있다. 최근의 동향들을 살펴볼 때 진화론의 입장이 반박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지만, 그 영향력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으며 많은 영역에서 시대정신의 역할을 여전히 감당하고 있다. 진화론의 기반을 통해 생성되는 많은 문화현상들이 존재하며, 그것들은 사람들을 유혹하고,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또한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도 진화론이 인류 역사를 어떻게 오염시켜 왔는지를 지적할 수 있는데, 진화론은 약육강식을 새로운 세계질서로 만들었고, 두 차례의 엄청난 세계대전을 일으키게 하였고, 민족과 민족을 적대시하게 만들었고, 식민지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3).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진화론과 창조론의 아이러니컬한 현상이 존재한다.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검증이 필요한 것이며 비과학적인 주장이라고 비난하면서도 위에서 언급한 진화론의 위험성과 한계, 그리고 최근의 불리한 동향을 알면서도 진화론을 믿으라면 아무런 검증도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진화론의 문제는 세계관의 문제이며 신앙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진화론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이데올로기로서 신봉되고 있으며 수많은 현대인들의 생각과 삶을 사로잡고 있다는 것이다. 진화론은 우주의 기원에 대한 주관적 철학이며, 많은 과학자들이 믿는 일종의 종교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과학을 절대시하는 이른바 과학주의를 살펴보고 특히 과학주의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진화론을 살펴보며, 기독교 세계관의 입장에서 진화론을 조명하고자 한다.

 

 

II. 18-19세기 과학과 다윈의 진화론

 

18세기 프랑스의 라부아지에(A. L. Lavoisier)는 신연소 이론과 원소 개념을 확립하여 근대화학사상에서 가장 빛나는 화학혁명을 성취하였으며, 뒤이어 돌턴에 의한 원자론의 확립과, 유기화학의 아버지 리비히(J. Liebig)에 의한 유기화합물의 분석법 확립과 농업화학의 시작은 봉건적 농업경영의 파괴에 실질적인 기초를 제공하였고, 비료공업의 창성을 촉진시켰다. 1796년에 라플라스는 태양계의 진화론을 발표하였고 최후의 계몽사상가로 불리는 라마르크(J. Larmarck; 1744-1829)1809년에 스스로 동물철학이라 이름 붙인 체계를 수립했는데, 이것은 근대적인 최초의 생물진화론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편, 18C 말 유럽대륙의 시대상황은 기존 역사에 대한 편견과 진보에 대한 심리학적 신조, 경제적 사회적 진보에 대한 자유방임주의가 태동되는 과정에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로버트 맬더스라는 학자는 1798년 그의 저서 인구론에서 생물에 대한 식량 공급의 한정과 그에 따른 경쟁으로 인해 유리한 변이만이 살아남아 그 자손을 번식시킨다는 개념을 제시하여 다윈(C. Darwin)으로 하여금 생물진화 메카니즘에 대한 착상을 가능하게 하였다.

 

다윈은 183112월부터 183610월까지 약 5년 간에 걸쳐 비글호라는 배를 타고 남태평양 항해시 지참했던 지질학자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라는 책에 언급된 견해의 채택과 광범위한 지질학적, 동식물학적 자료 수집으로부터 자연 선택에 의한 종의 진화설체계를 수립하게 되었다. 그 후 1859년에 드디어 자연선택 또는 생존경쟁에서의 적자생존에 의한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에 관하여라는 책자를 출간하게 되었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종의 기원의 학설의 발달에 대한 역사적인 개관을 먼저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그의 이론이 가져올 충격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자신의 이론이 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님을 설명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종의 기원에 표현된 생각은 다윈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변화를 전제하는 것이어야 했다. ‘종의 기원은 기존의 시간 개념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간 개념을 도입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는 이론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종의 기원은 일종의 시간 개념에 대한 반란이었다. 그것은 기존의 질서에 대한 도전이었고 새로운 사회를 향한 진보적 기대의 산물이었다.

 

종의 기원의 가장 큰 기여는 그것이 생물학에 가져온 변화보다 시간이라는 개념에 가져온 혁명적인 새로운 관점의 도입에서 살펴볼 수 있다. 사실 종의 기원은 하나의 이론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마이어(Ernst Mayer)에 따르면 다윈의 진화론은 최소한 다섯 가지 이상의 입증되어야 할 주장들, 다시 말해 (1) 진화 자체, (2) 공동 후손, (3) 종의 증가, (4) 점진주의, (5) 자연 선택 등에 대한 각각의 이론 줄기들이 얽기고 설키어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생물학적인 엄밀성에서 볼 때 각각의 이론들에 대해서 종의 기원이 입증하고 있는 사실은 지극히 적다.

 

책의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종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작은 변이들이 축적되어 새로운 종이 형성되는 것이라면 그러한 것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를 한가지라도 제시할 수 있어야함에도 불구하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끝까지 침묵한다(4). 단지 인공 사육 하에서 변이가 일어나는 것이라든가, 지리적 분포에 의한 변종의 출현, 가령 갈라파고스 섬에서 보여지는 핀치의 다양한 변종을 언급하면서 그것을 새로운 종의 출현을 암시하는 상황적 증거로 들고 있을 따름이다. 또한 점진적 변이의 축적에 의한 변화는 수많은 중간적 단계를 가정하고 있지만 이러한 중간단계를 보여주는 사례를 충분히 제시하고 있지도 못하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종의 기원에 대한 그의 논의는 제목의 거창함을 떠받쳐 주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다윈 자신도 그의 주장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근거가 빈약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종의 기원이 출판된 후 제기된 물음에 대해서도 해답을 제공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려야 했다. 이러한 그의 압박감은 종의 기원의 두 번째 판이나 세 번째 판에서 그가 그토록 열심히 해답을 제공하려고 노력한 흔적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오히려 이러한 지나친 노력이 진화론 이론 자체의 일관성을 약화시킬 정도였다(5).이처럼 취약한 증거 위에 세워진 이론이 빅토리아 시기의 엄밀한 학문적인 풍토를 딛고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1859종의 기원2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왜 그토록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졌는지를 이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처음부터 많은 논란과 반대를 불러 일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 20년이 지나지 않아 과학적 전통의 주류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고, 신속하게 자신의 지지자를 확보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자연 선택에 의한 종의 진화라는 도식은 지나치리만큼 단순하다. 이 이론을 처음 대했을 때 헉슬리는 왜 내가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던가?”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생물 개체는 수많은 변종을 낳게 되고 이러한 변종은 끊임없는 자연 선택의 압력에 노출되게 됨으로써 점진적으로 보다 자연에 잘 적응하는 생물로 진화하게 된다는 것은 너무도 간단한 가정으로 기존의 목적론적인 설명이 주는 번잡함을 넘어서는 생물학에 있어서의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으로 여겨졌다. 자연 선택이라는 간단한 법칙, 원리를 도입함으로써 기존의 화석을 둘러싸고 지질학자들 간의 논쟁에서 보여졌던 격변이나 재난 같은 부자연스러운 가정들을 구태여 도입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자연적인 원인만 가지고도 그 모든 것을 훌륭하게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종의 기원에서 보여지는 자연주의적 설명의 단순성은 기존 이론이 시간과 관련한 변칙들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수많은 임시방편적 가설들이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그것은 단순히 보조가설의 불필요성을 지적할 뿐 아니라 보조가설을 필요로 하는 기존의 패러다임 자체의 진실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진화론이 새로운 생물학의 패러다임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이론의 입증을 통해서가 아니라 단순성의 원리(principle of simplicity)를 제시함으로써 다른 이론들의 부족함을 드러내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종의 기원은 출판되자마자 상당한 저항에 부딪혀야 했다. 1860년의 영국과학진흥협회(BAAS)의 연례 회의에서는 윌버포스(Samuel Wilberforce)로 대변되는 종교적 반론에 직면하게 되었지만, 헉슬리(Thomas Huxley) 등의 노력에 의해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해에 열린 연례회의에서는 종교적인 반론이 아니라 과학 내부에서 제기된 반론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은 당시 영국 과학계의 거두였던 윌리엄 톰슨 경(William Thomson, Sir Kelvin)에 의해 제시된 지구의 연대와 관련된 것이었다. 톰슨은 그의 열역학 제2법칙에 기반해서 지구의 나이를 대략 1억년 정도로 추산해서 발표한 것이었다. 1억년이라는 시간은 상당히 긴 시간이기는 하지만 생물이 진화하기에는 턱없이 짧은 기간으로 진화론의 성립을 막는 최후의, 그리고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

 

다윈 자신은 이 이론이 주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고, 6판과 마지막 판에서 이것을 지금까지 제시된 것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종을 가능하게 했던 시간이 이제는 오히려 종의 출현을 압박하는 새로운 요소로 등장한 것이다. 이런 반론에 대해서 다윈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다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첫째, 종이 년 단위로 얼마나 빠른 속도로 변하는지 알지 못하며, 둘째 많은 철학자들은 과거에 흐른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확실하게 추정할 수 있을 만큼 우리가 우주의 구성과 지구의 내부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고는 아직 인정하지 않는다.” 다윈은 이러한 물리적 반론을 인정하기보다는 자신의 이론을 고수하는 입장을 택했다.

 

헉슬리 역시 1870년 영국 과학진흥협회 회장으로 행한 인사말에서, 톰슨의 반론을 의식하면서, “우리가 유아기를 기억할 수 없듯이 그것을 다시 볼 수 없지만 만약 내가 지질학적으로 기록된 시간을 넘어서 지구가 물리적 및 화학적 상태를 거쳐 지나간 것을 볼 수 있다면, 무생물 물질로부터 살아있는 원형질이 진화하는 것을 목격하리라 본다라고 말했다(6). 이것은 종의 기원에 관한 다윈 이론이 이론적으로 입증되거나 반증되는 것보다는 일종의 종교적 선택을 전제하는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면 종의 기원을 수용한다는 것은 당시 학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을까? 1874년 틴달(Tyndall)이 행한 벨파스트(Belfast)에서의 강연은 이러한 진화론 수용의 이유를 잘 보여주고 있다(7).

 

진화론은 실험적인 증명을 바탕으로 해서 제시된 이론이 아니다. 진화론은 실험에 의해서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반적인 과학적 사고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우리는 우주론의 모든 영역에서 신학적인 영향을 배제시킬 것을 주장한다. 어떤 사상이 과학의 영역에 침투될 때에는 그 영향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았던 예전의 경우를 보면 항상 문제가 따랐었고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헉슬리는 윌버포스와의 논쟁에서, 자신은 이미 15년 전부터 이 이론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에 반대해 왔고, 단지 여러 가지 박물학적 증거를 확인하고 나서야 받아들이게 되었노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마이어가 주장하듯이 헉슬리 자신은 다윈이 주장한 점진적인 자연선택 이론을 믿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윈의 이론을 옹호하기로 결심한 것은 이러한 시도를 통해 교회의 통제로부터 과학을 떼어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다윈의 이론은 그 자체의 이론적 가치보다 기존의 이론과는 달리 종교적인 요인을 배제한 채 자연적인 원인에 의해서 생명현상을 기술하였다는 점에서 과학자들의 지지를 얻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은 진화론의 수용이 이론적인 완결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종교로부터 과학의 독립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진화론이 이론적 완결성과는 무관하게 과학적 헌신의 마지막 장애물인 종교를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역으로 진화론이 이론적 성과와는 무관하게 교조적 위치를 확보하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이제 진화론은 종교적 교리로부터 독립한 과학의 상징으로, 새로운 생물학을 지배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부상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기존의 고전주의의 목적론적 이론들을 효과적으로 배제함으로써만 가능한 일이었다. 덴턴(Michael Denton)은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20년이 지나지 않아 단순한 가설이 아니라 과학적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교조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데에는 생물학적 이외의 요인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그에 따르면 다윈의 진화 이론의 골격이 되는 생물의 연속성과 점진주의적 개념은 19세기 당시의 빅토리아 왕조 사회의 일반적인 풍조였고, 근세 유럽 사회 속에도 깊게 스며들어 있던 정치적, 사회적인 보수주의 경향과도 잘 부합되는 것이었다는 것이다(8). 당시의 점진주의가 변혁을 요구받던 유럽의 군주들에게 질서, 조화 및 연속성들을 생물학적 측면에 도입시킨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굴드(Stephen Gould)와 엘드리지(Niels Eldredge)의 언급도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9).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진화 이론은 이러한 보수주의자들에게서보다 오히려 사회적 변화를 갈망하는 혁신적인 사람들에게 더 환영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빅토리아 왕조는 진보의 필연성에 대한 신념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계몽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진보란 현실 질서의 재현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진보를 위한 인간의 노력은 다분히 인식론적인 것이다. 하지만 당시 사회 운동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진보에 대한 계몽주의적 인식은 현상 유지와 다를 바가 없는 개념이었다. ‘종의 기원은 진보에 대한 계몽주의적 관점과는 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관점, 새로운 역사 의식을 제시했다. 그것은 시간에 대한 정태적인 이해에서 역동적인 이해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현재는 고정된 실체로서가 아니라 무한한 변화의 과정으로 이해되었고, 이제 인간은 단순한 발견이 아니라 역사의 조작을 향해 뛰어들 능동적 작인(active agent)으로 이해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진화론은 19세기 전반 동안 낭만적인 개념에 머물고 있던 진보 개념에 현실성(reality)이라는 생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스펜서(Herbert Spencer)는 사회 경제의 진보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으로서 자유 경쟁이 필요하다는 정신은 진화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자연선택이 유효하다는 다윈의 개념과 비슷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처음에 진화론에 대한 적대적 입장을 견지하던 막시스트들이 진화론을 광범위하게 수용하고, 그것의 열렬한 지지자로 돌변한 것은 진화론에서 나타나는 시간의 다이내미즘이 가진 잠재적 가능성을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혹자는 다윈의 글쓰기 방식 역시 그의 이론이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수용되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 가령 다윈 자신은 이미 불가지론을 넘어 무신론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종의 기원에서는 여전히 자연신학적인 어법을 계속해서 사용함으로써 신학적 장벽을 넘어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또한 책의 곳곳에서 빅토리아식의 도덕적 경구처럼 들릴 수 있는 내용을, 가령 발이 느린 동물은 반드시 멸망한다든가, “부지런한 벌이 얼마나 시간을 절약하는지하는 식의 내용을 적어놓음으로써 당시 사람들의 상식적 도덕 관념에 호소한다. 또한 자신을 철저한 과학자로 자처하지만, 자신의 이론을 주장함에 있어 모든 상황적인 증거를 제시하면서 결론 부분에 가서 단정적인 어법 대신 가정적인 어법을 사용함으로써 과학자적인 겸손의 미덕을 보여주는 식의 방식을 채택한다. 다윈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이러한 글쓰기 방식 자체가 가져다주는 효과도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 모든 사실은 다윈의 진화론의 사회적 수용이 단지 이론 내적인 요인이 아니라 사회적인 요인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모든 과학 이론 역시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에딘버러 학파의 strong program(10)을 문자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과학 이론의 성립이 아니라 수용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사회적 요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진화론처럼 이론의 성립 여부보다 이론의 수용이 강조되는 특이한 경우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 시기는 사회적으로 종교적 교리보다는 과학의 중립성(neutrality)이라는 개념이 선호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것은 과학이 제시한 낙관적인 전망에 대한 호감에서 비롯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이 시기에 일반화된 문화적 다원주의(cultural pluralism)의 결과이기도 했다. 문화적 다원주의 하에서 특정 종교의 교리를 옹호하는 일은 배타적이고 편견에 사로잡힌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중립성을 표방한 과학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더 수용되기 유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종의 기원은 이론적 적합성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근대 과학을 상징하는 하나의 기념비로써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III. 진화론의 한계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판된 후 그것은 여러 가지 각도에서 수용되었다. 우선 진화론자라 할지라도 반드시 그들의 입장이 일치하고 있지는 않았다. 마이어는 다윈의 종의 기원에 혼합되어 있는 각각의 이론들에 대해서 당시 생물학 내부의 진화론자들간에 입장 차이가 존재하고 있었으며, 공동의 전선에 서 있었다 할지라도 그 차이가 사소하지 않았다. 이러한 입장의 차이가 오늘날에 와서는 더 두드러져 보인다. 오늘날 가장 공격적인 진화론 옹호자로 꼽히는 도킨스와 굴드에 대해서도 종이 진화한다는 한 가지 사실을 제외하고는 단 하나의 일치점도 찾기 어렵다는 평가는 진화론 진영 내에서의 이론적 분열이 의외로 심각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진화론 진영 내부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입장의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진화론이 전통적으로 종교가 해 오던 역할, 다시 말해 인간의 궁극적 문제에 대한 해답의 역할을 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각각의 이론들은 서로에게 견제의 역할을 감당하게 되는데, 이것은 각각의 이론들이 과도한 형이상학적 주장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 데는 효과적일지 모르지만 인간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 해답을 제시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을 야기하게 된다. 진화론자들 간에 존재하는 이론적인 차이는 각각의 이론이 가진 임시성(tentativeness)과 가변성(changeability)을 나타내 주는 표징이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 하나의 해답이 아니라 모든 해답을 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진화론은 그 이론 자체가 무엇을 이야기하든지 간에 사회의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 설득력 있는 해답으로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이다.

 

진화론이 인간의 궁극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으로 작용하지 못하는 데에는 이론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근본적인 결함도 지적될 수 있다. 진화론은 가장 간단한 것에서 가장 복잡한 것으로의 진화를 가정하지만 어떻게 그러한 발전이 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점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못한다. 다윈의 해답은 시간과 우연에 의존하는 것이 고작이다. 오랜 기간에 걸친 우연적인 변이의 축적만이 그에 대한 해답이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시간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우연의 반복에 의해 눈같이 정교한 기관으로 발전하는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 다윈 스스로도 확신할 수가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많은 구조가 어떤 단계를 거쳐 현재의 완벽한 단계에 이르렀는지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많은 경우의 기관이 어떤 중간 단계를 거쳐 현재의 상태에 도달했는지 상상하기가 심히 어렵고 .”

 

눈과 같은 정교한 기관이 과연 자연선택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난처하지만 그것이 너무도 어려운 문제라는 것을 너무나도 통감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선택의 원리를 이처럼 놀라울 수밖에 없는 정도에까지 확장하여 적용하기를 꺼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다윈은 이처럼 자신이 확신하기 어려운 진화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진화의 시간의 길이가 그 모든 것을 만들기에 충분할 정도로 길었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또 다른 한편 자연선택을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설명한다. 아담 스미스에 의해 사용된 이래 보이지 않는 손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과정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은유가 되었다. 페일리 역시 악의 현실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논의를 펼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다윈과 페일리는 서로 만나고 있다(11).

 

진화론이 이론의 사실성 여부와는 상관없이 사회적으로 수용되었다는 것은 진화론이 사회적 요구에 따라 읽혀질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출발했음을 의미한다. 진화론 자체는 무 목적성을 전제한다. 하지만 그것을 수용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진화의 목적성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들이 진화 이론을 수용한 이유는 진화론 자체가 미래를 향해 열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진보 이념이 계몽주의 장벽에 갇혀 현실 속에 안주하고 있었다면 진화에 대한 사상은 그러한 감금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때 진화의 관점을 수용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진화 이론 자체의 사실적인 엄밀성은 중요하지 않다. 이것은 수많은 19세기의 진보주의자들이 진화론의 사실성 여부와 관계없이 그 이론을 그토록 열렬하게 수용할 수 있었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하지만 진보주의자들의 의도대로 일이 잘 진행되지는 않았다. 완벽성(목적성)에의 집착은 사회진화론으로, 우생학으로 대변되는 위험한 결론으로 나아가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은 분명 진화론 자체가 가진 논리적인 귀결은 아니다. 하지만 진화론이 적절하게 답변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부수적인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진화론은 인간의 궁극적인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그 해답을 제시하는데 실패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IV. 진화론에 대한 기독 세계관적 조명

 

진화론에 대한 기독교의 주된 대응은 근본주의적 태도를 고수함으로써 진화론 자체를 부정하는 입장을 취하든가, 아니면 진화론이 가져온 시간 개념을 성경 연구의 방법으로 차용함으로써 자유주의적인 신앙의 길로 나아간 것처럼 보인다(12). 이러한 대응의 부작용은 만만찮다. 전자가 학문의 위축과 기독교 내의 반지성적인 문화를 조장했다면, 후자는 기독교 신앙의 사실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아직까지 진화론에 대한 기독교적 대응이 만족할만한 상태에 있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역사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가능성은 영원히 사라져버린 것일까?

 

필립 존슨(Philip Johnson)은 진화론적인 관점이 불러일으킨 예상치 못한 비윤리적인 혼란스러운 결과 때문에 조만간 헌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발언할 기회가 올 것임을 전망하고 있다. 이것은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발생한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다. 1960년대 이후 미국 사회 내에서 진화론의 공식적인 승인이 있고 난 후에 비눗물 미끄러짐(soapy slide) 현상으로 많은 도덕적 부작용들이 속출하게 되었다. 그것은 비단 20세기 미국의 경우에만 국한되는 것 같지는 않다. 진화론이 처음으로 대중적으로 수용되었던 영국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당시의 정황에 대해 트리빌리언(Trevelyan)영국사회사’(Social History of England)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13).

 

이 논쟁은 1860년대에 시작하여, 70년대를 거쳐 80년대에까지 치열하게 벌여졌다. 이것은 기적에 대한 모든 신념을 혼란스럽게 할 정도까지 되었고, 신약성경에 대한 신앙에까지 그 영향이 미치게 되었다. 지식 계층은 이 갈등의 긴장 아래 조금씩 반성직자적, 반종교적, 유물론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이 변혁과 논쟁이 격렬하던 시대에 개인과 가족의 불행이 많이 발생했고, 정신에 관한 탐구가 성행했으며, 남녀에 대한 가치관에도 모순이 드러났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들은 진화론 자체가 필연적으로 역사 속에 혼돈을 야기하는 어떤 요소를 내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혼돈은 진화론 자체가 인간의 궁극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으로서 실패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진화론 자체 내의 이론의 다양성 때문에 발생하는 것일 수도 있고, 진화론 이론 자체가 주장하는 무 목적성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이든 진화론은 미래의 전망을 불투명하게 만듦으로써 필연적으로 역사 내부에 카오스(caos)적인 상황을 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진화론의 귀결로 나타나는 카오스는 역사에 대한 공포를 가중시키게 되는데, 이것은 역설적이게도 역사에 대한 기독교적인 대응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이러한 기회를 맞이하면서 기독교는 다시 한번 카오스에서 코스모스(cosmos)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의 식물학자였던 아사 그레이(Asa Gray)는 창조론자였지만 진화론이 악에 대한 설명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진화론을 수용하였다(14). 이것은 진화론이 기독교적인 면에 있어서 자연신학이 놓친 중요한 또 하나의 차원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시간이란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진화론은 이 세계의 갱신 가능성에 대해서 발언하지 못함으로써 역사의 공포만을 가중시키게 되었다. 따라서 진화론이 대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대답이 되기 위해서 기독교 세계관은 혼란한 역사 속에서 새로운 질서의 가능성, 다시 말해 역사의 종말론적 차원을 자신 있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V. 결론

 

로이 클레멘츠(Roy Clements)하나님의 마스터플랜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이 세상에는 에덴의 동쪽으로 나아가려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려는 경향과 그것과는 정반대로 서쪽을 지향하는, 다시 말해 하나님 나라를 향한 움직임이 공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볼터스(Albert Wolters)는 이것을 구조와 방향의 문제로 나누어서 생각한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은 구조의 방향을 하나님 나라를 향한 방향으로 되돌려 놓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 세계관적 관점에서 보면 시간에 대한 종말론적 인식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시간은 이 세상의 악과 갱신 가능성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진화론은 가장 간단한 것에서 가장 복잡한 것으로의 진화를 가정하지만 어떻게 그러한 발전이 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점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못한다. 다윈의 해답은 시간과 우연에 의존하는 것이 고작이다. 오랜 기간에 걸친 우연적인 변이의 축적만이 그에 대한 해답이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우연의 반복에 의해 눈같이 정교한 기관으로 발전하는 일이 기능하다고 다윈 스스로도 확신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진화론의 문제는 세계관의 문제이며 신앙의 문제라 할 수 있다. , 진화론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일종의 종교성을 가지고, 이데올로기로서 신봉되고 있으며 수많은 현대인들의 생각과 삶을 사로잡아 왔다.

 

우리는 기독교 세계관 관점에서 모든 학문을 조명할 필요가 있으며, 과학 역시 진화론의 한계 및 오류에서 벗어나 기독교 세계관에 의해 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과학은 물질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청지기직을 수행하는 올바른 도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1) 양승훈, “창조론 대강좌”, CUP, 대구, pp. 34-45, 1997.

(2) William A. Demski, "Intelligent Design," IVP, Downers Grove, pp. 14-19, 1999.

(3) 고건, “하나님을 믿는 과학자”, 창조, 108, http://www.racs.org/kaist/articles/etc/scientist.html, 15 Jan. 2001.

(4) Myer, 신현철 옮김, “진화론 논쟁”, 사이언스 북스, pp. 43-49, 1998.

(5) Eisley, L., "Darwin's Century," Gollancz, p. 242, 1959.

(6) Hellman Hal, "Great Feuds in Science : Ten of the Liveliest Disputes Ever," John Wiley & Sons, Inc., 1999.

(7) Tyndall, J. Presidential Address to British Association, George Robertson, Melbourne, pp. 43-44, Denton, Michael, Evolution: A Theory in Crisis, Burnett Books Press, 1985, 임번삼외 역, 진화론과 과학, 한국창조과학회, p. 83, 1994.

(8) Denton, Michael, Evolution: A Theory in Crisis, Burnett Books Press, 1985, 임번삼외 역, 진화론과 과학, 한국창조과학회, p. 80-81, 1994.

(9) Gould, S. J. and Eldredge, N., "Punctuated Equilibria: The Tempo and Mode of Evolution Reconsidered," Paleobiology 3, 1997.

(10) David Bloor, "Knowledge and Social Imaginary," London, Univ. of Chicago Press, p. 7, 1991.

(11) Gould, Stephan, "Darwin and Paley Meet the Invisible Hand," Natural History, November, 1990.

(12) Moore James, "Geologists and Interpreters of Genesis in the 19th Century," Univ. of California Press, pp. 322-350, 1986.

(13) Trevelyan, G. M., Social History of England, Longmans, Green and Co., pp. 565-566, 1944.

(14) 성영곤, “서양의 과학 전통과 기독교: 연구사적 개관,” 정진홍 외, 종교와 과학, 대우학술총서, 아카넷, p. 40, 2000.

(15) Clements, Roy, Masterplan, 황영철역, “하나님의 마스터플랜: 에덴동산에서 새예루살렘까지,” IVP.

 

출처: 한국창조과학회 창조지 No. 148,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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